티스토리를 시작한 이유
기억이 나는 한 평생 글을 써왔던 것 같다. 종이 다이어리에, 노트에, 블로그에, 폰 메모장에, 인스타그램에. 생각이 많고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성향 탓에 항상 머릿속 생각 뭉치를 밖으로 빼내야만 뭔가에 집중을 할 수 있곤 했다. 보통은 다듬어지지 않은 감상이나 화두를 혼자만 볼 수 있는 곳에 갈겨쓰거나 끼적이는 편이지만, 가끔은 이 생각의 꼬리를 길게 빼내서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가 펜시브를 관리하듯) 밖에 꺼내고 다듬어 공유하기도 한다. 다만 공개 글을 쓰는 공간이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이다 보니,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너무 속속들이 공유하고 싶지는 않아 답답하게 느낀 적도 많다. 어쩌면 장문의 진지한 글이 그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보기 기대하는 게 아닐 수 있어서도 있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해 볼까 싶었으나 하도 오래 방치해 둬서 지금은 연락이 끊기고 어색해진 이웃들이 많다보니 낡은 블로그에서 그들이 그대로 내 글을 볼 수 있다는 게 불편했다. 네이버라는 플랫폼 자체가 좀 폐쇄되어서 답답한 느낌도 있고.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공간을 원했다. 나는 성향이 좀 별나서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내 속마음을 (사소한 것이라도) 잘 오픈하지 않는 편인데 내 인생은 마치 혼자만의 첩보영화를 찍는 기분이다. 내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무슨 느낌인지 들키고 싶지 않아... (심지어 그렇게 비밀스러울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난 그렇다.) 여하튼 그래서 이렇게 오픈된 대나무숲 같은 자유로운 티스토리로 흘러들어오게 되었다.
티스토리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허리를 다쳐서다. 며칠 전 회사에 갔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황망히 돌아온 뒤로 며칠째 허리에 힘이 안 들어가고 뻣뻣하고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어 앓아누워 있는데, 주말 내내 집에서 조심조심 누워있다가 일요일 저녁이 지나가는 아쉬움에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 와서 목욕을 하다가 욕조 속에서 갑자기 가입하게 됐다.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아이패드로 "일자허리","편평등", "허리가 뻣뻣", "허리에 힘이 안들어가" 따위를 검색하다가. 허리가 아프니 아무래도 굉장히 우울해지고, 누굴 만나지도 못하고 딱히 할 것도 없는 와중에 구글 검색에서 나온 티스토리 블로그들을 보고 갑자기 스파크가 튀었달까. 맨 위 문단에 쓴 이유로 몇 달쯤 전부터 티스토리를 한번 해볼까 막연히 생각하고 적어두긴 했었으나, 초대장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어서 미루고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또 그것도 아니어서 물 속에서 바로 개설해 버렸다. 올해 마침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기계식 키보드를 구매했고, 며칠 전엔 마침 지저분한 책상을 치워 실질적으로 뭘 할 수 있는 책상으로 만들어 놓은 우연도 맞아떨어졌다. 지금은 허리에 부담이 덜 가는 푹신한 리클라이너 의자에 비스듬이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 마치 스티븐 호킹이 된 기분이야.
앞으로 주로 신변잡기 글과 영화 리뷰 글, 정보글을 섞어 올릴 듯하다. 물론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MZ세대 직장인으로서 애드센스와 부수입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부수입은 부차적인 문제고 이렇게 혼자서 광야에 맘껏 떠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 즐거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조잡하거나 간지 떨어지는 걸 싫어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톤앤매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덕지덕지 지저분한 깡통 광고 블로그처럼 운영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일단 그럴 능력과 에너지가 없다) 모든 컨텐츠는 내 삶으로부터 나올 예정이다. 이렇게 새로운 모멘텀이 생기니 조금 신나고 기대도 된다. 보니까 HTML, CSS, 구글 애널리틱스를 활용하게 될 것 같아서 소싯적 생각도 나고 그런다. 서식지를 가능한 최대로 아늑하고 편안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가 바로 나의 디지털 서식지가 될 것 같아 조금 설렌다. 아무리 컨텐츠의 패러다임이 이미지와 영상으로 변해도 가장 뼈대가 되는 기본값은 여전히 글이라는 생각이 있다. 글과 비주얼과 비즈니스, 잘 엮어서 천천히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보자.
블로그 이름이 kinesis(움직임)인 이유는 내가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산만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어디 얽매여 있는 걸 제일 싫어하고(무서워하고) 늘 구름처럼 상태를 바꾸고 자유롭게 유유히 떠다니고 싶다. 닉네임의 모티브기도 하다. 같은 자세로 가만히 있으면 심지어 허리에도 나쁘다는 걸 이번 기회에 또 한번 뼈저리게 깨닫기도 했구요. 신체도 정신도,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한다. 이 블로그가 내 자유로운 생각의 상태변화로 수놓을 수 있는 하늘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잘 부탁해!